'휴식' 태그의 글 목록 (3 Page) | 행복하게 홀로서기.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꺼불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찢으며 나는 알았네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그런 사랑 여러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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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운의돈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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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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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운의돈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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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은 책이 아무리 두꺼워도 글이 참 쉽게 읽히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정 작품만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여태껏 접한 일본 소설들은 대다수가 가벼운 문체를 사용하여 내용 전개가 빠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이번에 읽은 '나미야 잡화점' 역시 일본 소설 특유의 빠른 전개와 흡입력 있는 문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줄거리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출간된지도 몇 년이나 된 작품이고 대중적으로 널리 읽힌 작품인 만큼 내용은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두꺼운 책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재미있게 잘 읽은 책입니다.

 

나미야 잡화점을 읽고나니 고민을 이야기한다는 것에 대한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항상 잡생각이 많아서 집중을 잘하지 못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정말 안 좋은 습관인 것을 알고는 있지만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 습관입니다. 나미야 잡화점처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누군가에게 고민을 이야기 할 때,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은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나의 고민을 상대방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쉽게 정답을 내리질 못하겠습니다. 저는 나미야 잡화점을 그런 관점에서 읽어나갔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이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매 순간마다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정답을 찾길 원합니다. 나미야 잡화점에 고민을 털어놓는 극 중의 인물들 역시 대다수 그런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고민은 없었습니다. 물론 현실세계의 저 스스로도 어느 누가 선뜻 해결해주지 못할 고민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고민쯤은 하나씩 가지고 계시겠죠? 쉽게 털어놓기 힘들어서 쌓아두기만 하는 말 못 할 고민들.

 

나미야 잡화점을 읽고 나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들어준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정리하자면, 아픔과 고민을 이야기하고자 할때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공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은 일본 내에서도 상당히 화제가 된 작품으로, 동명의 타이틀로 개봉한 영화 '나미야 잡화점' 역시 많은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원작의 감흥을 깨트리는 아쉬운 장면 (?)이 몇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썩 나쁘지 않은 영화라고 하더군요. 생각나면 한번 볼까 봐요.

 

이제 현대사회는 갈수록 언 커넥티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서로 마주하고 유대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동물일 텐데..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나미야 잡화점같이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그런 공간들이 그리워집니다. 예를 들면.. 어릴 적 초등학교 앞에 있는 문방구와 같은 그런 곳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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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운의돈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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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이브가 다가오던 작년 어느날, 차분한 느낌의 영화 포스터에 이끌려 상영관을 찾아 혼자서 영화를 보러갔습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겨울을 몹시 기피하는 편입니다. 워낙 추위를 많이 타는 것도 있지만.. 겨울의 냄새라고 할까요? 혼자 지내는 긴 시간들이 괜시레 지독하게도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기분이 듭니다. 

 

 

 

영화 '윤희에게'의 첫인상은 그런 겨울의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몹시 신선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납니다. 오히려 포근했다고 할까요? 아련한 추억을 곱씹으며 오늘의 하루 하루를 버티어내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포스터를 보면서 괜시리 동질감을 느꼈나봐요. 썩 유쾌한 내용은 아니겠거니, 하는 생각에 추운 겨울밤 혼자봤던 영화.. 하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도록 설마 설마 했었습니다. 영화는 한국에 사는 평범한 가정주부 '윤희' 그리고 일본 오타루에서 살고 있는 '쥰'의 사랑을 그린 퀴어무비더군요. 어찌보면 극중 윤희의 딸로 나오는 '새봄' 역시 주연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윤희는 사랑하지 않는 결혼을 하고 이혼 후 딸 새봄을 홀로 키우면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평범한 여성입니다. 말수도 적은편이고, 도무지 속내를 알수 없는듯한 모습입니다. 윤희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은 그런 윤희의 심경을 그대로 대변 해 주는 듯 합니다. 한국에서 윤희가 보내는 일상은 무미건조한 무채색의 연속입니다. 자신이 느꼈던 감정, 그리고 그때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벌을 주면서 콘크리트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듯한 모습이 애잔한 생각마저 들더군요.

 

딸 새봄은 그런 윤희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거울이자 무미건조한 일상의 유일한 버팀목입니다. 그와 동시에 추운 겨울뒤에 찾아오는 봄을 의미하는 캐릭터일지도 모릅니다. 딸의 이름 '새봄'과도 같이.

 

딸 새봄은 윤희앞으로 도착한 한통의 편지를 핑계로 엄마 윤희에게 일본 여행을 제안합니다. 잠시 망설였던 윤희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무리인줄 알면서도 딸 새봄과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게 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합니다. 

 

 

 

 

일본에서 촬영된 씬들은 매 순간마다 장치적인 꾸밈이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담백하게 담아내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그와 동시에 한국에서 윤희가 보냈던 시간들과는 몹시도 대비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새하얗게 쌓여있는 눈들을 보고 있자니 모든 시간이 정지되어버린 듯한 느낌마저 받더군요. 그리고 영화는 중간 중간 장면변환과 동시에 똑같은 대사를 각각의 캐릭터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동시간대를 살아가고 있는) 반복해서 읆조리는 연출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부분이 몹시 흥미로웠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서로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공간에서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며 물리적인 거리는 떨어져있지만 서로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경험은 제3자인 관객의 입장에서 몹시 흥미로운 전개로 다가왔습니다. 그 물리적인 거리를 연결해주는 장치가 바로 딸 '새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윤희에게'는 각자의 취향을 인정하고 공유하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딸 새봄이 필름 카메라를 들고다니면서 당시의 순간과 찰나의 감정들을 간직하고 싶어하는 것 처럼, 주인공 윤희와 쥰의 사랑 역시 부정하고 잘못된 선택이 아닌 하나의 취향인것이라고 이야기 하는것만 같더군요. 그런 의미로, 윤희에게 있어 딸 새봄과의 일본여행은 나의 삶을 인정할 용기를 내고자하는 개인의 독백과도 같았습니다. 

 

영화속 윤희는 이제 더이상 스스로를 부끄러워 하지도, 자신을 책망하지도 않을것입니다. 단지 그들은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려 노력했을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땅의 수많은 윤희들 중 한명일 지도 모를 일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인정할 용기가 없었던 그시절의 윤희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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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운의돈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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