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마리아 릴케 - 인생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를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 나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들을 모아 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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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시인 - 다리 저는 사람
꼿꼿하게 걷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춤추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그는 앉았다 일어서듯 다리를 구부렸고
그때마다 윗몸은 반쯤 쓰러졌다 일어났다
그 요란하고 기이한 걸음을
지하철 역사가 적막해지도록 조용하게 걸었다
어깨에 매달린 가방도
함께 소리 죽여 힘차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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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태연 시인 - 그냥 좋은 것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어디가 좋고
무엇이 마음에 들면
언제나 같을 수는 없는 사람
어느순간 식상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냥 좋은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특별히 끌리는 부분도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 때문에 그가 좋은 것이 아니라
그가 좋아 그 부분이 좋은 것입니다
그냥 좋은 것이
그저 좋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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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천 시인 - 나무와 나
나무들은 제 나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한 살씩 나이를 먹을 때마다
동그라미를 그려둔대요.
나는 동그라미를 그리는 대신
일기장 하나씩을 남겨놓지요.
그 일기장엔
날마다 지낸 그대로의 이야기가
죄다 적혀 있어요.
커서 읽어보면 부끄러울 이야기
뉘우칠 이야기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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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채원 작가 - 누구나 그렇게 서른이 된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었다.
고된 시간을 견뎌낸 꽃이라 해서
모두가 제때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조금 느리고 서투르면 어때.
우리의 서른은, 아직 피어나는 중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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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 - 유월이 오면
아무도 오지 않는 산 속에 바람과 뻐꾸기만 웁니다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감자꽃만 피어납니다
이곳에 오면 수만 마디의 말들은 모두 사라지고
사랑한다는 오직 그 한 마디만 깃발처럼 나를 흔듭니다
세상에 서로 헤어져 사는 많은 이들이 많지만
정년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별이 아니라 그리움입니다
남북산천을 따라서 밀이삭 마늘잎새를 말리며
흔들리 때마다 하나씩 되살아나는 바람의 그리움입니다
당신을 두고 나 혼자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모두 쓸데없는 일입니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도 혼자 보고 있으면
사위는 저녁노을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사는 동안 온갖 것 다 이룩된다 해도 그것은 반쪼가리일 뿐입니다
살아가며 내가 받는 웃음과 느꺼움도
가슴 반쪽은 늘 비워둔 반평생의 것일 뿐입니다
그 반쪽은 늘 당신의 몫입니다
빗줄기를 보내 감자순을 아름다운 꽃으로 닦아내는
그리운 당신 눈물의 몫입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지 않고는 내 삶은 완성되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
살어서든 죽어서든 꼭 다시 당신을 만나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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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작가 - 인연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줄 알지 못하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고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
인연은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연은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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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시인 -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하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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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토미히로 - 매일초
오늘도 한 가지
슬픈 일이 있었다.
오늘도 또 한가지
기쁜 일이 있었다.
웃었다가 울었다가
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일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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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 -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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